| |||
개가 된 CEO 개인적으로 토요일은 무한도전이 방영되는 요일이라고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실 것같네요. 최근엔 5주 연속 20% 이상의 시청률을 올리며 '역시 무한도전'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지난 9얼 1일 방영되었던 정형돈 PD연출의 '체인지'편이었습니다. 그동안 캐릭터와 실제 모습의 경계를 모호하게 지우며 시청자들의 큰 웃음을 자아냈던 무한도전 멤버들이 서로 정반대의 캐릭터를 맡아 역할놀이를 하는 것이었죠. 웃기지 못해 존재감이 없다고 놀림받는 정형돈은 메인MC 유재석의 역할을, 바른 사나이 유재석은 악마의 아들 박명수의 역할을, 박명수는 귀여운척하는 훈남 이미지 정준하의 역할을, 정준하는 항상 자신을 놀리던 꼬마석사 하하의 역할을, 하하는 절친한 친구 노홍철의 역할을, 노홍철은 가장 말이 없는 정형돈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역할 바꾸기 놀이에서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정형돈과 유재석이었습니다. 정형돈은 유재석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해(무난하기가 쉽지 않은 자리였음에도) 수줍음많고 존재감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 조금만 더 다듬으면 메인MC급으로 성장할 수 있겠구나라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유재석은 악마의 아들 박명수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며 진행능력뿐만 아니라 몸개그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켜주었습니다. 덕분에 이 코너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던 것은 박명수였죠. 유재석이 분석한 박명수 캐릭터는 막무가내 안하무인 무한이기주의를 지닌 캐릭터로 진행의 흐름을 자기위주로 툭툭 끊어놓는 것이 특기인 까닭에 전체를 아우르고 맥락을 잡아나가야 하는 메인MC에게는 정말 넘기 힘든 산이었습니다. 박명수는 이번 역할바꾸기를 통해서 자신의 캐릭터가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런 캐릭터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받아주고 공간을 열어준 유재석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거예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죠.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워낙에 자기중심적인지라 이 역지사지라는 것이 말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무한도전의 예를 보더라도 유재석씨가 MC로서의 어려움을 백번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역할 한번 바꿔보는 것이 박명수씨가 생각을 바꾸는데 더 나으니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편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게 편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은 양복에 머리 짧게 자르고 각목 들고 오는 사람에게 괜히 침뱉고 반말로 응대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의사결정의 지름길을 사용하면 노력이나 시간이 많이 절약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사람이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데에 있습니다.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또는 믿는 사람에게 발등을 찍히는 경우는 모두 이런 편견에 사로잡혀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실수에서 비롯됩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를 무시할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식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개가 된 CEO'는 편견을 주제로 한 자기계발우화입니다. 내용은 이래요. 대명컴퓨터 사장 고대명은 자수성가형 인물로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에 적이 많아졌습니다. 공격적인 마케팅에 적대적 인수를 당했던 수많은 중소업체부터 대립적인 구도의 노조까지 말그대로 사방에 적인 것이죠. 그러던 어느날 고대명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정신을 잃으며 개로 변신하게 됩니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요. 이리저리 쫓겨다니던 그는 안하리라는 무대책인생의 말단여직원을 만나 그녀의 도움으로 현재 회사가 처해있는 상황, 자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합니다. 안하리 역시 사장대행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가진자, 높은자에 대한 적대감을 거두고 자기 인생에 책임질 줄 아는 한 사람의 인재로 거듭나게 되죠. 과연 고대명은 회사도 다시 되찾고, 개가 된 저주 역시 풀 수 있을까요?
저는 사람이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180도 변했다면 스스로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거나 변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라고 보는 거예요. 아마도 이 책의 저자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집불통 불도저 고사장이 언제 변했죠? 변하지 않으면 평생 개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꼈기때문입니다. 책 한 권 읽지 않고 책임감도 자기관리도 안되는 루저 안하리는 언제 변했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장대행이라는 직함을 수행하면서 힘든 결정을 내리고 어려운 대화를 하면서부터입니다. 우리가 자기계발서적을 읽고 자기계발강의를 참석하는 이유는 굳이 개가 되지 않고서도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 꼭 지옥을 거칠 필요는 없지만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러야 하는 법입니다. 개가 되지 않고서도, 의사에게서 '1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서도 변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각오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꾸준한 독서도 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ps. 전 오래 전에 이 책의 초고를 본 적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구성은 지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이야기의 개연성을 만들어주는 장치들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발전되었네요. 이리저리 못 마땅한 점들을 장문에 걸쳐 피드백했던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읽었던 자기계발우화 중에서 가장 스토리가 좋은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소설같은 우화를 준비하시는 분이 있다면 이 책의 스토리를 분해해서 연구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담당편집자는 이렇게 오래 붙들고 고생한 책은 없었다고 하시던데 그만한 노력이 책에서 보인다고 격려해드리고 싶습니다.
(다음 북리뷰는 10월 1일입니다.)
인상깊은 구절 : 한국은 정말 편견이 많은 사회죠. 하지만 사회를 탓한다고 세상이 바뀔까요? 커튼을 닫아놓고 세상을 원망한다고요? 뜨거운 돌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구르는 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내가 바뀌지 않고는 남을 바꿀 수 없습니다. 제가 사고를 당한 것은 3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데는 3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좋은 일은 결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편견을 버리십시오. 할 수 없다는 편견을 버리십시오. 편견이 깨지지 않을 거라는 편견도 버리십시오. 오늘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책읽기와 책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은 밖에서 오지 않는다 (0) | 2010.11.24 |
---|---|
사는것의 어려움 (0) | 2010.10.08 |
도서칼럼소개 (0) | 2007.09.05 |
행복한 변화 (0) | 2007.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