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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0℃ 최고의 나를 만나라 아시다시피 질그릇과 자기는 가치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납니다. 그 이유는 생성될 때 견뎌야 할 온도에 달려 있습니다. 질그릇은 800도 정도의 고열이 있으면 되기 때문에 굳이 가마가 없어도 노천에서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1250도가 넘는 열이 필요합니다. 이 온도에 도달하면 흙 속에 있던 유리질들이 녹아 밖으로 흘러나오게 되고 그제서야 도자기는 아름다운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이죠. 흙의 입장에서야 800도나 1250도나 괴롭고 힘든 온도이겠지만 기왕 겪는 고통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천차만별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동기부여가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말한 새로운 80-20법칙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과의 80%는 노력의 마지막 20%에 결정이 된다는 것이죠.
저자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끌어들입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하게 되고 피곤한 토끼의 낮잠으로 거북이가 승리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진짜 이야기는 그 다음부터 시작되죠. 재대결에서 패배한 주인공인 거북이 슬론을 다시 챔피언으로 만들기 위해 각계의 전문가들이 투입됩니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비전을 불어넣고, 의식전환 프로그램을 실시하며, 시각화 트레이닝도 합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정신력 강화훈련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효율적인 시간관리법에 입각하여 분, 초를 쪼개어 사용합니다. 하지만 슬론은 재차 패하면서 실업자가 되고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이 모든 잘못의 시작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 슬론은 산 속의 현자 도공 거북이를 찾아가면서 모든 것을 바로잡고자 합니다.
하하하..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기존의 자기계발, 동기부여 프로그램에 한껏 조롱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런 것들은 양적으로 조금의 향상은 가져올지언정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죠. 게다가 방향이 올바르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노력은 다시 돌아와야 하는 수고를 더욱 많아지게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가장 먼저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요? 다른 사람보다 나은 '나'가 아니라 가장 나다운 '최고의 나'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그에 걸맞는 내가 가진 최고의 것을 내놓는 것이죠. 비슷한 말 같지만 순서가 달라요. 슬론의 실패는 세상의 요구에 등떠밀려 거기에 자신을 맞추어나갔던 것에 있습니다. 일시적인 성공을 거둘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실패가 예견되며 무엇보다 행복하지 못합니다. 먼저 '나다움'에 초점을 맞춘 후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다움', '최고의 나'에 초점을 먼저 맞추면 행복의 기존조건은 충족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와 성공이 금방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 지에 대한 소통의 감각이 필요하고, 그에 걸맞는 최고의 수준을 내놓을 수 있도록 자기준비가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SHOW 감각과 1250도의 열정입니다. 요즘 TV광고를 가득 메우고 있는 SHOW의 카피는 '세상에 없던, 세상이 원하는 쇼를 하라'입니다. 더 나은 쇼가 아니라 세상에 없던 쇼이며, 나만 만족하는 쇼가 아니라 세상도 원하는 쇼라는 점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그걸 찾은 다음에는 세상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고의 노력을 해야합니다. 1250도 이상이 되기 위해 노력에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나다움 + SHOW 감각 + 1250도의 열정이 합쳐지면 여러분은 행복과 성공을 모두 얻을 수 있습니다.
구성요소뿐만 아니라 순서까지도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먼저 나다움을 잃으면 성공은 하더라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럼 성공의 의미가 없죠. 또한 SHOW 감각이 없으면 세상의 주목을 끌지 못합니다. 주목을 받지 못하면 성공의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반면 SHOW 감각이 있더라도 1250도의 열정을 더하지 못하면 세상의 주목을 끌지언정 만족을 시키지 못하는 미완의 걸작으로 남게 됩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을 머리로 이해하더라도 가슴으로 느끼기는 쉽지 않고, 행동의 변화까지 이르기에는 너무나 어렵다는 점입니다. 슬론이 나다움에 주목을 하기 시작한 것은 거북이들의 희망이었던 때가 아니라 세상의 무관심과 실업, 재정적인 바닥을 경험하던 때입니다. 가문의 영광이었던 두터운 등딱지도 인공합금으로 교체되어 가문의 수치가 된 터였죠.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무리에 휩쓸려 다니는 중에는 그 무리가 어디로 가는지, 그곳이 내가 원하는 곳인지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가 경쟁에 지친 한 기자가 지금은 현자로 존경받는 슬론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과연 그 기자가 제대로 가르침을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네요.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려다 만 사람은 여기에서 갈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변화의 필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변화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아직도 견딜만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멘토, 좋은 코치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죠.
인상깊은 구절 : 우리의 가슴과 영혼이 뜨거워지면 내면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있던 최상의 것들이 비로소 밖으로 분출되지요.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했나요? 그럼 일단 해보세요. 그러면 그것이 나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이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때는 잠시 불꽃처럼 번쩍하고는 이내 불길이 사그러집니다. '이것이다'라는 가슴의 소리를 들었다면 도전하세요. 그것이 정답이라면 그 일을 할수록 당신의 영혼은 더욱더 뜨거워질 겁니다. 그리고... 그 뜨거워진 영혼이 당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최상의 것들을 끌어낼 것입니다.
처음 그 일을 시작할 때면 일단 내리막길을 내려가게 될 겁니다. 익숙하지 않은 세상과 낯선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당신이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비난, 조소, 조롱을 받을 수도 있죠.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거센 물살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거센 물살을 이겨내고 계곡 물을 건너면 오르막길을 오를수 있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이 오르막길이 우연히 나타난 것처럼, 혹은 행운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르막길을 오를수 있게 된건 용기를 갖고 내리막길과 계곡 물을 건넜기 때문입니다. |
** 권윤구 님은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상에서 도서칼럼을 쓰시는 분입니다.
정말 직접 만나보고 싶은 분이죠. 여러분도 가끔 들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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