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 지음/책이있는마을/204쪽/9,000원)
내가 이철수 국장을 안 것은 오래전부터이지만, 중구청에서 같이 근무한 것은 2000년 5월부터였다.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은 동료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이 국장은 성품이 조용하면서도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었다. 특히 친화력이 뛰어나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퇴근 후 가끔 동료들과 회식이 있을 때면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곤 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여 본인에게는 직접 묻지 않고 그를 잘 아는 사람을 통해 알아봤더니, 부인의 건강이 좋지 않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항상 밝은 표정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그의 부인이 그토록 중병에 걸려 있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업무 처리에도 여전히 빈틈이 없었고, 부인의 병에 대해서는 동료들에게조차 함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부인이 희귀성 난치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직장 상사로서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물었었다. "도대체 암도 아니고 무슨 병인데 현대의학에서 고칠 수 없단 말이오?" 그제야 이 국장은 한참 머뭇거리더니 부인의 난치병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 주었다. "현대의학으로 고치지 못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요. 그래도 안 되면 사랑의 힘으로라도 일으켜볼 생각입니다."
이 국장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부인의 병은 '사랑의 힘으로' 분명히 치료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내가 2003년에 퇴직한 후 가끔 전화통화를 하면서 부인의 안부를 묻곤 했지만, 그는 괜찮아질 거라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아들 결혼식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부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국장과 식사라도 함께 하며 위로해주고 싶은 터에, 그동안 아내와 함께 투병생활을 해온 일들을 책으로 엮게 되었다며 얼마 전 원고를 들고 왔다. 나는 원고를 잡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읽으면서 뭉클해져 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는지 모른다. 그의 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아내가 발병한 지 올해로 꼭 10년째다. 그러니까 1997년 1월에 허리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한 후 병이 깊어진 지금은 전신을 움직이지 못한 채 하루 종일 누워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내는 식물인간은 아니다. 모든 육체적 기능만 상실했을 뿐 호흡과 심장의 작동은 정상인처럼 살아 있다. 뿐만 아니라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할지라도 의식은 또렷하고 청각기능과 시각기능도 정상이다. 다만 얼마 전부터 심각한 우울증세를 보이며 자꾸만 깊은 잠 속에 빠져들곤 한다.
아내는 이제 머지않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추호도 아내와의 이별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 언젠가 아내에게 기적이 찾아와 병석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10여 년 동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현대의학과 대체의학, 민간요법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치료법을 찾아 다녔다. 어딘가에 치료법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절망과 혼돈을 헤쳐 나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 잡지에서 8년 전에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트럭에 태우고 다니며 돌본 한 남자의 기사를 감동 깊게 읽은 적이 있다. 트럭운전수였던 그는 집에 누워 있는 아내를 돌볼 사람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아내와 함께 다니며 트럭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했다. 그는 하루 열 번 이상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도, 아내에게 죽을 끓여 먹이는 일도, 아내의 머리를 감겨주는 일도, 운전을 하다가 길 위에 차를 세워놓고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5년 전부터 아내가 웃음을 되찾았다고 했다. 더구나 옛날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는 없지만 음식을 스스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움직이는 힘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를 치료했던 담당의사는 그 소식을 듣고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던가.
그 기사를 읽으며, 그 남자는 의사가 갖지 못한 사랑이 있었기에 그런 기적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사랑이 의학적 지식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그런 나와 아내에게 하느님의 가호가 있을진저.
이 국장의 글은 부부간의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이 어떤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산 예화였다. 부부 사이에 작은 일 하나 서로 감싸주지 못하고 부딪치고 헤어지는 일이 다반사인 요즘 시대에, 온갖 어려움과 시련을 사랑으로 껴안고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 『당신이 살아있으므로 행복합니다』 중에서
내가 이철수 국장을 안 것은 오래전부터이지만, 중구청에서 같이 근무한 것은 2000년 5월부터였다.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은 동료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이 국장은 성품이 조용하면서도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었다. 특히 친화력이 뛰어나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퇴근 후 가끔 동료들과 회식이 있을 때면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곤 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여 본인에게는 직접 묻지 않고 그를 잘 아는 사람을 통해 알아봤더니, 부인의 건강이 좋지 않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항상 밝은 표정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그의 부인이 그토록 중병에 걸려 있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업무 처리에도 여전히 빈틈이 없었고, 부인의 병에 대해서는 동료들에게조차 함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부인이 희귀성 난치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직장 상사로서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물었었다. "도대체 암도 아니고 무슨 병인데 현대의학에서 고칠 수 없단 말이오?" 그제야 이 국장은 한참 머뭇거리더니 부인의 난치병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 주었다. "현대의학으로 고치지 못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요. 그래도 안 되면 사랑의 힘으로라도 일으켜볼 생각입니다."
이 국장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부인의 병은 '사랑의 힘으로' 분명히 치료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내가 2003년에 퇴직한 후 가끔 전화통화를 하면서 부인의 안부를 묻곤 했지만, 그는 괜찮아질 거라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아들 결혼식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부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국장과 식사라도 함께 하며 위로해주고 싶은 터에, 그동안 아내와 함께 투병생활을 해온 일들을 책으로 엮게 되었다며 얼마 전 원고를 들고 왔다. 나는 원고를 잡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읽으면서 뭉클해져 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는지 모른다. 그의 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아내가 발병한 지 올해로 꼭 10년째다. 그러니까 1997년 1월에 허리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한 후 병이 깊어진 지금은 전신을 움직이지 못한 채 하루 종일 누워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내는 식물인간은 아니다. 모든 육체적 기능만 상실했을 뿐 호흡과 심장의 작동은 정상인처럼 살아 있다. 뿐만 아니라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할지라도 의식은 또렷하고 청각기능과 시각기능도 정상이다. 다만 얼마 전부터 심각한 우울증세를 보이며 자꾸만 깊은 잠 속에 빠져들곤 한다.
아내는 이제 머지않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추호도 아내와의 이별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 언젠가 아내에게 기적이 찾아와 병석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10여 년 동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현대의학과 대체의학, 민간요법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치료법을 찾아 다녔다. 어딘가에 치료법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절망과 혼돈을 헤쳐 나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 잡지에서 8년 전에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트럭에 태우고 다니며 돌본 한 남자의 기사를 감동 깊게 읽은 적이 있다. 트럭운전수였던 그는 집에 누워 있는 아내를 돌볼 사람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아내와 함께 다니며 트럭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했다. 그는 하루 열 번 이상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도, 아내에게 죽을 끓여 먹이는 일도, 아내의 머리를 감겨주는 일도, 운전을 하다가 길 위에 차를 세워놓고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5년 전부터 아내가 웃음을 되찾았다고 했다. 더구나 옛날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는 없지만 음식을 스스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움직이는 힘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를 치료했던 담당의사는 그 소식을 듣고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던가.
그 기사를 읽으며, 그 남자는 의사가 갖지 못한 사랑이 있었기에 그런 기적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사랑이 의학적 지식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그런 나와 아내에게 하느님의 가호가 있을진저.
이 국장의 글은 부부간의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이 어떤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산 예화였다. 부부 사이에 작은 일 하나 서로 감싸주지 못하고 부딪치고 헤어지는 일이 다반사인 요즘 시대에, 온갖 어려움과 시련을 사랑으로 껴안고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 『당신이 살아있으므로 행복합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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