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여가

가난하게 사는 법(만물상, 오태진)

노진희 2006. 3. 9. 17:02

가난하게 사는 법 - 조선일보, 만물상. 오태진

 

미국 정치학 교수 스콧 니어링(1883 - 1983)은 반전운동에 나섰다가 해직되자 1932년 버몬트주

시골로 들어갔다. 니어링은 돌집을 짓고 밭을 갈고 과일을 키우며 소박하되 조화로운 삶을

일궜다. 그는 100세 때 스스로 곡기를 끊어 죽음의 시간을 택했다. 그때까지 그가 지킨 생활

철학이 있다. "하루 네시간은 먹을거리를 얻는 노동에, 네 시간은 친교에, 네 시간은 독서나

글쓰기처럼 자기를 돌보는 일에 쓰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

1960년대 말 대기업 입사자들의 퇴직 후 삶을 추적한 특집기사가 어제 조선일보에 실렸다.

그 중에서도 현대건설 상무를 지낸 김영진씨 이야기가 여러모로 눈길을 끈다. 그는 현대그룹

입사동기생 146명 가운데 유일하게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은퇴자들이 서울과 수도권을

떠나지 못하는 현실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아들 딸, 친구들과 가까이 살고 싶고, 문화.의료

시설이 빈약한 시골로 가기는 두려운 탓이다.

은퇴 후 중산층 생활을 하려면 7억원이 있어야 한다는 세상이다. 소박하게 잡아도 한 달에

200만원이 필요하다. 김영진씨가 충주 근교 산자락에 살면서 쓰는 월 생활비는 51만원이라고

한다. 쌀 값을 포함한 식비가 5만원. 찬거리는 텃밭에서 기르는 채소와 이웃들이 주는 것으로

족하다. 제일 많은 지출이 경조사비 20만원이다. 인사 차리기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용돈 연금이라고들 비아냥대도 한달 연금 42만원이 그에겐 알토란 같다.

지출내용에서 각별히 돋보이는 것이 잡비 7만원이다. 월 한두 차례 보는 영화비를 빼곤 대부분

책값이다. 책 3000권을 책장에 꽂아두고서도 그렇다. 한 가구의 책 신문 구입비가 월 1만400원

밖에 안 된다는 통계를 생각하면 그 의 책값 지출 비용은 어떤 학자 못지 않겠다. 그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 아침 산책과 독서다. 텃밭을 가꾸고 네댓 시간 책을 읽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 니어링의 말대로 '완벽한 하루'다.

어느 당 시인의 무제에서 김씨의 독서 모습을 떠올려 본다. ' 한적한 대문은 산길로 열리고/

글읽는 방에 버드나무 깊다. 한낮 햇살 그윽히 비추면/그 맑은 빛 옷자락에 어린다.'

걷고 사색하고 일하고 독서하는 그의 삶이 가난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소한의

것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도 용기요 지혜다. 안빈낙도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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